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어 잔재설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[[일제강점기]] 때 들어온 [[일본어]] 잔재가 [[한국어]] 안에 남아있다는 주장. 사실 서로 다른 두 문화가 접촉할 때 국력, 문화적 영향력 같은 힘의 차이가 있으면 [[언어]]도 영향을 받아 언어가 사멸하거나 타 언어의 문법 및 어휘 요소들이 대거 유입되는 일이 있기는 하나 한 언어가 다른 언어와 상호작용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본래 있던 낱말이나 표현을 [[외국어]]가 대체한다고 해도 관점에 따라서는 큰 문제가 아니다. 다만 [[한국]]은 20세기 초반 [[일본]]에게 지배를 겪었기 때문에 [[광복]] 이후 한국에서는 일본 잔재의 청산 문제가 제기되어 왔고, 그 연장으로 [[한국어]]에 있는 [[일본어]]의 잔재도 청산해야 한다는 시각이 꾸준히 존재했다. 일종의 [[언어순화 운동]]의 한국어판이다. 영문학자 이재호 [[교수]]는, 한국 광복 이후 미군정이 들어오자 필요에 의해 영한[[사전(책)|사전]]을 편찬하던 중 시간과 돈이 모자라 당시 일본이 가지고 있던 영일사전을 그대로 가져온 탓에 일제식 언어문화도 남아서 이런 현상이 생겼다고 주장한다. 그래서 나온게 1946년 류형기 [[목사]]의 ≪신생영한사전(新生英韓辭典)≫이었고, 현대 사전들도 이를 충실히 본받아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하고 있다.≪영한사전 비판≫에 자세한 내용이 있다. 공영방송을 비롯한 주요 언론 매체에서는 일본어 잔재 청산의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며, [[국립국어원]]이나 학계의 다수견해로 채택된 사례도 있으니 몇몇 사례는 참고하는 것이 좋다. 다만 시중 고시 또는 [[공무원]] 수험서는 일본어 잔재인지 아닌지 분명하지도 않은 사항에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고 진리처럼 싣고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. 여기에는 인터넷 맞춤법 검사기도 한 몫을 한다. 가장 큰 문제는 아무래도 별다른 근거도 없이 "일본어 잔재다!"라고 주장하는 사례가 매우 많고, 대중들 역시 무비판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를 문제삼으면 [[매국노]] 내지는 [[친일파]]라고 여긴다. 이 문제는 단순하게 접근하기에는 좀 복잡한 양상을 띤다. 이런 저런 문제가 뒤섞여 있어서 파고들수록 새로운 사안이 많고 언어적 접근과 함께 역사적 접근이 상당히 필요하기 때문이다. 예를 들어 일본어에서 온 말이 아니어도 오해받는 일 또한 상당히 많고 일본제 한자어라고 여겨졌던 낱말이 일제강점기 이전 한국어에서도 이미 사용되고 있었던 일도 많다. 대표적인 것이 [[경성]](京城)과 [[부락]](部落). 둘 다 [[삼국사기]]에도 나오는 단어이다. 옛 문헌 검색 페이지들을 통해 찾아보면 이 두 낱말이 많이 나온다. 그러나 부락은 일본어 [[부락민]]의 뜻이 섞여 원래 뜻과 다르게 변질됐다. 원래 부락이라는 말은 촌락이나 읍락같은 다른 한자어나 동네, 고을같은 우리말도 두루 있다. 이렇다 보니 심지어 전문가들도 실수로 잘못 판단하는 일이 종종 빚어진다. '해외'(海外)가 한 때 국립국어원의 순화 대상이었던 것도 그런 사례인데, 당시에는 '섬 나라인 일본을 기준으로 한 표현이다.' 라며 '국외'(國外)로 순화하라고 했으나, 역사학자들의 지적을 받아 2012년에는 순화 대상에서 빠졌다.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. [[일본식 한자어]] 문서에서 추천 도서로 언급된 ≪사쿠라 훈민정음≫도 고대 [[중국]]에서부터 쓰였던 '산보'(散步)를 일본식 한자어로 지목하는 등 은근히 오류가 있다. 무엇이 진짜 일본어 잔재인지 판단하는 것은 결코 혼자만의 사고로는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는 복잡한 사안인 것이다. 왜 복잡한가 하면 역사상으로 한국어와 일본어가 오랫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왔기 때문이다. 예를 들어 한국어 '[[섬]]'과 일본어 시마(島) 같은 낱말의 상관관계를 논하는 때가 있다. [[일본]]은 고대 문화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한국의 [[백제]]와 [[가야]]를 중심으로 한 삼국시대 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. 이처럼 [[국립국어원]]에서 [[고유어]]을 살펴보다 보면 소리와 뜻이 일본어와 유사한 것들이 많다. 반면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식 표현이 들어와 당시 한국어에 영향을 끼쳤다. 가령 '-하고 있었다' 같은 과거 진행형 표현은 이전에는 없었던 것으로, 원래는 유럽어식 표현이었던 것이 번역 문체가 되어 일본을 거쳐 유입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. '[[경제]]'라는 economy의 한자번역이 있다. 중국인들은 처음에 이 낱말을 《[[사기]]》에서 유래한 理財(이재)라고 번역하고 일본인들은 《[[대학(경전)|대학]]》의 '경세제민'(經世濟民)이라는 표현에서 차용한 經濟(경제)라고 번역했다. 이재가 이코노미의 원의미와 실제적 의미 모두를 살린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돈벌이라는 표현보다 진중한 가치를 내재하는 경제가 압도하여 통용되면서 이재는 치부(致富)의 표현이 되고 경제가 economy를 뜻하게 되었다.[* 일부에서는 한자 종주국인 [[중국]]마저도 일본식 한자어가 60%를 차지한다고 하지만 출처와 근거가 분명한 주장은 아니다. 위키백과의 '일본제 한자어' 항목에서는 중국과 베트남에서 일본식 한자어가 본래 쓰던 한자어와 경쟁하며 도태된 일이 많다는 서술이 있다.] 과거 일본식 한자어가 유입되던 현상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국가들이 비슷하게 겪었던 현상이다. 일본어의 영향은 [[타이완]]에서도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아저씨를 가리키는 歐吉桑(어우지쌍, 오지상), 아줌마를 歐巴桑(어우바쌍, 오바상)이 있으며[* 둘 다 부정적인 어감을 담고 있다.] 최고를 一級棒(이지빵, 이찌방)이라 한다. 이외에도 운전기사를 가리키는 運將(윈장, 운짱) 등이 매체에서 그대로 나오기도 한다.[* 일본어로는 [[https://ja.dict.naver.com/#/entry/jako/e4381c1f6400472b8a6037ff6323e69a|運ちゃん]]이며, 발음은 운짱이다. 그런데 한국에서도 이런 말은 60대 이상 연령대가 비공식적으로 사용한다. 예를 들면 [[임상수]] 감독의 영화 [[그때 그 사람들]] 홍보 전단지에 나온 등장인물 소개를 보면, 운전기사로 등장하는 인물이 '''운짱'''이라고 불린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